건축에 대한 소고()


분위기:
모든 건축은 분위기로부터 시작됩니다.
형태보다 먼저 다가오는 감각, 문을 열기도 전에 느껴지는 공기의 질감.
공간은 말을 건네지 않지만 빛의 온도, 재료의 숨결, 낯선 고요함을 통해 이미 우리에게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우리가 짓고자 하는 건축은 그 말 없는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라납니다.
빛:
그리고 그 분위기를 가장 먼저 깨우는 것은 빛입니다.
빛은 건축이 감정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건축은 빛을 다루는 기술이 아니라 빛이 머무는 시간과 그 움직임을 담아내는 그릇입니다.
아침에 낮게 깔리는 빛, 정오의 명징한 그림자, 해질녘 퍼지는 잿빛의 투명함.
이 모든 빛의 변화는 공간 안에 리듬을 만들고, 사람의 감정을 흔듭니다.
내·외부의 경계:
빛이 머무는 방식은 곧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정의합니다.
건축은 이 경계를 직선으로 긋지 않습니다. 문과 창, 벽과 틈, 마당과 복도처럼 경계는 흐릿하고 유연해야 합니다.
바깥의 풍경이 실내로 스며들고, 실내의 온기가 바깥으로 번져나가는 그 흐름 속에서 사람은 공간과 하나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건축은 안과 밖을 나누는 일이 아니라, 그 둘 사이에 머무는 법을 찾는 일입니다.
중력:
그러나 그런 모든 감각적 흐름조차도 결국 한 방향으로 끌려갑니다.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몽상적인 중력입니다.
이 중력은 단지 건축이 견뎌내야하는 동시에 건축을 지탱하는 물리적 힘이 아니라,
공간을 시간 위에 놓고, 감정을 아래로 가라앉히는 느린 흐름입니다.
시간이 고이는 자리, 침묵이 눌리는 깊이.
우리는 이 보이지 않는 힘 덕분에 공간이 허공에 떠 있는 것이 아닌, 마음에 닿도록 내려앉는다고 믿습니다.
소우주:
그렇게 감각과 중력이 하나로 수렴될 때, 건축은 하나의 우주가 됩니다.
한 채의 집, 하나의 방, 짧은 복도와 작은 창.
그 속에 한 사람의 시간과 감정, 계절과 기억이 담기면 그 공간은 더 이상 기능이 아니라 세계가 됩니다.
단순하지만 완전한, 작지만 충만한 우주 하나
.
섬세함:
그 세계는 섬세하게 짜여 있습니다.
벽 하나, 빛의 각도 하나에도 감정의 결이 스며들고, 그 결은 다시 사람의 기억과 호흡을 바꿉니다.
섬세함은 단순히 정교함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닿는 조용한 감각입니다.
투명성:
그 안에서 우리는 투명성을 추구합니다. 무언가를 숨기기보다 드러내되, 너무 확실하게 말하지 않는 것.
공간은 자기 자신을 과장하지 않고 그저 그 자리에 머무르며 조용히 빛을 통과시킵니다.
투명한 건축은 곧 정직한 감각입니다.
모호함:
그러나 모든 것이 명확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모호함이 더 풍부한 상상을 불러옵니다.
경계가 흩어지고, 기능이 중첩되고, 의미가 열릴 때 건축은 단순한 도면이 아닌, 열려 있는 질문이 됩니다.
모호한 공간은 사람에게 해석할 권리를 돌려주며, 그 안에서 삶은 더 풍부하게 움직입니다.
시적 상상력:
결국 그 모든 것은 시적 상상력으로 완성됩니다.
공간이 감정의 리듬을 따라 흐르고, 재료가 시간을 품으며, 구조가 이야기를 품게 되는 순간.
건축은 기능을 넘어서 하나의 언어, 그리고 하나의 작품이 됩니다.
우리는 그런 건축을 꿈꿉니다.
하나의 세계이자, 하나의 시이며, 건축가의 내면이 섬세하게 투영된 구조.
이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건축입니다.